숭실대학교 철학, 행정학 학사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목회학 석사 전도사, 벧엘선교교회 청년부 유튜버, 유튜브 채널 '종리스찬TV' 작가, 저서 '하나님 구독 좋아요 알람설정' 종리스찬 프로덕션 대표 교회친구 다모여 메신저 CTS "청년백서2" MC
목회 철학
One soul을 One way로 리딩하기 위해 One thing합니다.
One Way
진리는 예수님 한 분 뿐이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으로 오셔서 인간을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이 사실을 믿을 때에 인간의 죄가 십자가의 예수께 전가되어 의롭다 칭함을 받게 된다. 이 모든 구원의 과정을 성령께서 이끄신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1:17) 인간은 철저히 타락했다. 때문에, 사람의 행동과 믿음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 인간의 모든 선행과 율법은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없다. 오직 성령께서 견인하시는 믿음을 통해서만 구원에 이를 수 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4)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부르심 속에서, 성령은 그의 내면을 조명하신다. 그 때에 인간은 스스로가 죄인이며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믿는 믿음으로만 구원될 수 있다는 사실을 (성령의 조명 아래) 깨닫게 된다. 이 때에 인간은 판결상 무죄를 경험하게 된다. 실제로는 죄인이지만 무죄 판결을 받았기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다. 이때에야 하나님의 양자가 되며, 성화의 과정을 살아가게 된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 10:10)
One Soul
예수님은 한 사람을 위해 오셨다. 예수님의 초점은 대중에게 있지 않다. 그분의 관심은 한 사람에게 있다. 구원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공동체적인 차원에서의 구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아흔 아홉마리의 양이 아닌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위해 오셨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이 바로 나이다.
One Thing
구원된 개인은 (의롭다는 판결은 받았지만) 여전히 죄인이다. 때문에 죄로 변질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위해 교회를 만드셨다. 칼빈은 교회를 일컬어 ‘인큐베이터’라고 말했다. 교회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훈련되어지고 능력을 갖추게 되어지는 훈련소이며 그들을 보호하는 안식처이다. 교회에서 크리스쳔의 정체성과 삶을 배워간다.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에베소서 2장 21~22)
교회는 하나의 유기체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며 몸은 성도들이다. 예수님과 성도들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예수님의 몸인 성도들은 각자가 다른 역할들을 수행한다. 모두가 다른 역할을 수행하지만 결국 그것은 예수님의 몸인 교회를 위한 것이고, 결론적으로는 예수님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성도들은 예수님의 몸을 세워가는 과정중에 성화되게 된다.
에베소서 4장 11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각자가 다른 지체로 보이지만, 교회가 하나의 유기체라면, 성도들은 하나의 몸이다. 한 성도가 아파하면 다른 성도가 아파해야 하며, 한 성도가 기뻐하면 다른 성도들도 함께 기뻐해야 한다.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에베소서 4:16) 또한, 성경이 말하는대로, 세상이 죄와 죽음의 권세로 가득찼고, 그 유일한 대안이 복음이라면 교회는 하나님의 전진기지다. 오직 교회를 통해서만 복음이 전달될 수 있다. 교회가 아닌 다른 곳에서 복음이 흘러나올 수는 없다. 만약 교회를 통해서만 복음이 전달될 수 있다면 교회는 하나님의 희망이다. 에베소서 3장 9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10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11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벧엘청년부가 바라보는 시대와 문화
시대에 발맞추어 복음을 전하기 위해 다음 사항들에 중점을 둡니다.
율법에서 복음으로
사람은 도덕과 선함으로 신의 만족을 얻어내려고 한다. 종교이고 율법이다. 한국교회는 교리적으로는 복음을 이야기하면서도 사역의 방향은 율법적이었다. 이를테면, "새벽기도에 나와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인간의 모든 헌신과 선함은 그 자체만으로는 불완전하기에 하나님의 용납을 얻어낼 수 없다. 오직 십자가의 복음으로만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있다. 모든 사역에 복음이 스며들어 있어야 한다.
시대에 따른 소통방식의 변화 : 모더니즘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모더니즘의 특징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모더니즘 사회에서의 좋은 사람이란 권위에 순종하는 사람이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하나의 언어이며 형식이다. 모더니즘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영화는 국제시장이다. 국제시장은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기 위한 한 남자의 분투를 다룬다. 아버지는 피난길에서 가족과 헤어지며 어린 큰아들에게 이야기한다. "아버지가 돌아오지 못하면 네가 가장이다."
어린 아들에게 아버지의 권위는 절대적이었다. 어린 아들은 성장한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파독 광부로, 베트남전 참전용사로, 장애를 얻으면서도 가족을 지킨다.
대한민국은 30여년만에 모더니즘 시대에서 포스터 모더니즘 시대로 바뀌었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자유이다. 선택할 수 있는 자유. 모더니즘 시대의 언어와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의 언어는 다르다. 때문에 성경도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진리는 같지만 표현방식은 달라야 한다. 예를 들어, 모더니즘 시대의 사람들은 권위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성경의 권위에 기대면 효과적이다. 하지만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의 사람들은 권위를 불편해한다. 그들에게는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주어야 한다. 성경에 등장하는 영적 가치를 자세히 풀어 설명하고 이렇게 이야기하면 마음을 연다.
"혹시 이 말씀이 따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면 함께 기도해주십시오." 벧엘은 시대와 문화의 언어로 복음을 전한다.
안티, 가나안 청년들을 타겟팅
벧엘 청년부의 80퍼센트는 안티 크리스쳔, 혹은 가나안 청년이다. 기독교를 혐오하던 사람이던가, 교회를 떠났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때문에 자기 생각과 개성이 강하고 재능이 출중하다.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이는 우리에게도 공통분모가 있다. 기독교를 싫어했기에 더 성경적인 교회를 만들고 싶어하는 열망이다. 교회를 떠나 있다가 인생의 고비를 만나 "이제는 돌아갈 때가 되었어." 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왔다.
열정과 개성을 존중하며 예수님 안에 하나가 되어가는 것이 우리의 중요한 아젠다이다. 우리는 예정된 안티, 가나안 청년들을 위해 사역한다.